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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이야기

끝없는 잡초처럼, 사람으로 잇는 농사
- 김슬기 / 김우람

2026년 3월 19일의 만남

올바른농부장은 제주에서 다품종소량생산과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직거래 장터이자 소비자와 만나는 커뮤니티다. 한 작물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가격 변동과 기후 위기를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감귤과 제철 채소, 잡곡과 허브까지 여러 작물을 소량으로 재배하며,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방식을 지향한다. 이 선택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전략이자 땅을 지키기 위한 태도다. 장터에서는 농부가 자신의 농산물 가격을 정하고 소비자에게 어떤 작물인지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상품이 아니라 농부의 시간과 얼굴을 함께 만난다. 올바른농부장은 실패와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버티는 공동체의 실험이자, 제주 농업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올바른농부장의 농부들은 다품종 소량생산을 체험할 수 있는 농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제주에서 함께 농사짓는 남매, 슬기와 우람의 생명밥상을 만났다.

글 조남희 | 사진 진정은

김슬기 / 김우람

제주에 온 지 만 5년. 슬기와 우람 남매는 어머니와 함께 2021년 2월 말 제주로 들어왔다. 처음부터 농사꾼 집안은 아니었다. 가까운 친척 중에도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 남매는 도시를 떠나 밭으로 들어왔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온 생각과 질문이 있었다. 사람답게 사는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

처음 시작은 동생 우람이었다. 육지에서 회사를 다니던 그는 주말농장을 드나들었다.

(슬기) 동생이 주말농장에서 못 먹게 생긴 방울토마토 같은 걸 가져와서 자꾸 "누나 맛있지! 맛있지!.. 맛있다는 대답을 강요하더라구요. (웃음) 도시농부학교에서 자연농을 세가족이 배우면서 알게됐어요.

‘아, 이 아이가 진짜 농사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

보기엔 상품이 아니어도 먹을 수 있는 것, 오히려 더 진한 생명력을 가진 것들이 그의 마음을 먼저 흔든 듯했다. 코로나 시기, 성당에도 자유롭게 갈 수 없던 때 남매와 어머니는 함께 도시농부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자연농, 생태순환, 절기, 들풀 수업을 들으며 한 해를 보냈다.

슬기는 원래 규칙적인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는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이 농사와 잘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이 원하는 삶이 또렷해질수록 마음이 움직였다.

귀농의 시작

(우람) 저는 원래 자연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결정적으로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의가 생겼어요.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기보다 기계 부품처럼 취급되는 느낌이 컸거든요. 도시의 획일적인 생활도 답답했고요. 아파트, 비슷한 옷, 비슷한 일상, 비슷한 소비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처음엔 막연하게 주말농장을 하면서 준비했는데, 누나가 “할 거면 늦기 전에 해보라”고 밀어줬어요. 마침 청년 창업형 후계농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나이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8~10개월 정도 아주 급하게 귀농 준비를 했습니다. 코로나 시기라 집합교육이 거의 없어 전국의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지원센터 교육을 다 찾아다니며 들었어요.

(슬기) 저는 사실 회사 다니는 삶도 나쁘지 않았어요.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동생이 정말 농사에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도시농부학교에서 같이 1년 가까이 배우다 보니 저도 많이 바뀌었고, 동생이 하고 싶은 삶이라면 내가 용돈이라도 지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처음엔 “네가 자리 잡으면 나도 나중에 가겠다” 정도였는데, 도시농부학교 금창영 선생님(現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혼자 시골에 가면 사람들이 안쓰럽게 여겨 일도 주고 먹을 것도 준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가 “내 아들을 왜 혼자 고생시키냐, 그럼 다같이 가자!”고 하셔서 결국 세 식구가 함께 제주로 오게 됐어요.

귀농지로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람) 처음 1순위는 사실 제주도가 아니었어요. 도시농부학교에서 연결해줄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전국을 다니며 찾아봤구요. 귀농에서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이더라고요. 그런데 도와줄 사람이 있더라도 축사가 많거나 생활 인프라가 부족해서 어머니가 버티기 어려운 환경인 곳은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제주는 연고가 없었지만 저희 가족에게는 익숙한 곳이었어요. 어릴 때 여름방학마다 함덕에 와서 지냈거든요. 벌레 잡고 수영하고, 여덞살짜리가 뙤약볕에서 커다란 수박을 힘겹게 들고 민박집 할아버지를 따라가던 기억도 있고요. 엄마가 어릴 때부터 자연을 가까이하게 해주셨어요. 새소리 테이프를 틀어주기도 했고요. 그래서 제주가 낯선 시골이라기보다 마음속에 익숙하게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버틸 수 있는 곳이어야 했고, 그 점에서 제주가 최종 선택지가 됐죠.

슬기와 우람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지만, 어쩌면 그 무렵부터 이 남매에게 제주와 농업은 하나의 정서로 남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아이들 곁에서 윤무부 박사의 새소리 테이프를 틀어주던 사람이었다. 생명과 자연을 가까이 두는 감각은 그렇게 오래전부터 집 안에 깔려 있었지 않았을까.

제주에서의 첫 농사

도시농부학교에서 농사를 배웠더라도, 제주에 와서 농사를 시작했을 때 힘들지는 않았나요?

(슬기) 첫해가 가장 힘들었어요. 원래는 300평 정도를 생각했는데 여건상 1,000평 밭을 빌리게 됐어요. 처음부터 감자, 단호박, 수박, 참외, 완두, 마늘, 땅콩, 팥, 콩류까지 정말 많은 작물을 심었어요. 그것도 거의 삽질로 시작했고요. 밭도 마음에 드는 곳을 구한 게 아니라 “이거라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시작한 거라 쉽지 않았어요. 밭을 여러 번 빌렸다가 뺏기기도 했고, 유기 인증이 나올 시점쯤 그만 지으라고 하는 일도 반복됐어요. 결국 재작년에는 800평 남짓한 밭 한 필지를 매입했어요. 도시농부학교에서 배운 자연농을 제주에서 그대로 하기 어렵다는 걸 몸으로 배우게 됐죠.

“제주도는 겨울에도 풀이 자라고, 잡초를 매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빨라요. 정말 뫼비우스의 띠 같아요. (웃음) 한쪽 끝까지 매면 처음 맨 데가 다시 자라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우람) 제주 땅은 비옥도가 낮고, 바람이 세고, 여름엔 덥고 습하고, 겨울에도 쉴 수가 없어요. 도시에서 상상한 농사와는 완전히 달랐죠. 게다가 외지인 입장에선 농사 기술보다 정착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런 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진입장벽이 높아요. 지금은 가족이 함께 약 6,500평 규모를 돌보고 있어요. 그중 2,500평 정도는 노지감귤이고, 나머지 4,000평 정도가 밭작물이에요. 별도로 30평 정도는 자연농 구역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품종소량생산이라는 선택

현재 몇 품목 정도를 재배하고 계신가요?

(우람) 전체 재배 품목은 10가지가 넘어요. 다만 소득 작물로 집중하는 건 4~5가지 정도고, 그것도 앞으로는 3~4가지 수준으로 더 줄이려고 해요. 자연농 구역에서는 여러 작물을 조금씩 계속 키우고 있고요. (슬기) 처음보다 품목 수는 많이 줄었어요. 초보 때는 정말 이것저것 다 심었는데,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저희 성향상 완전히 한두가지로만 가기는 어렵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결은 유지하고 있어요.

한 작물에 집중하지 않고 다품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슬기) 원래 귀농 목표 자체가 다품종 소량생산 자연농 자급자족이었어요. 시장 논리만 따라가기보다는 우리 삶의 방식과 맞는 농사를 하고 싶었어요. 이것저것 길러서 우리가 먹고, 남는 것을 나누고, 일부를 판매하는 방식이 저희에게는 더 자연스러웠죠. (우람) 제주에서는 한 작물에 크게 걸면 리스크도 커요. 해충, 날씨, 바람, 노루 같은 변수도 많고요. 실제로 토종 푸른콩은 노루가 순을 계속 먹어 폐작했고, 찰옥수수는 육지보다 빨리 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벌레도 더 빨리 왔어요.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다품종이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기도 했어요.

밭에서 대파를 뽑는 우람
수확한 대파
밭에서 대파를 뽑는 우람. 그들의 대파는 웃대가 길고 깜짝놀랄정도로 굵었다

콰이콰이(빨리빨리)!만을 사람에게 외치긴 싫어

다품종소량생산의 가장 큰 장점과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우람) 어려운 점은 결국 효율이죠. 노동은 많이 드는데 소득 구조는 약해요. 생협 같은 곳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먹고살려면 사실 훨씬 큰 규모가 필요해요. 만평에 가깝게요. 그런데 그 정도 규모가 되면 인부를 써야 하고, 속도를 우선하게 되고, 과연 그 삶이 내가 원한 ‘유기적인 삶’인가 싶은 고민이 생겨요. 인부를 써야 되는데 인부를 쓰면은 그 사람을 내가 유기적으로, 정말 유기적으로 대할 수 있을까? 얼마전에도 중국인 인부들을 불러서 당근수확을 했는데 콰이콰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누나를 통역으로 더 부려먹었어요. (웃음) 그래서 저희는 규모 확대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주에서 농사짓는다는 것은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우람) 저는 육지에 비해 “관의 지원은 약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연결로 버텨내는 농업”이라고 하고 싶어요. 제주 농사는 땅도, 바람도, 계절도 만만하지 않아요. 그런데 겨울 생산이 가능해서 육지와 다른 판로를 만들 수 있는 장점도 있어요. 제주 땅이 무조건 좋은 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진 않아요. 뜬 땅이라 바람이 불면 흙이 날리고, 위로 크게 자라는 작물은 뿌리가 흔들려 어렵습니다. 당근처럼 땅속 작물이 유리한 이유도 그런 데 있어요. 또 겨울에도 풀이 자라서 농사가 멈추지 않아요. 힘들지만 그만큼 제주만의 농업 조건을 배워야 하는 곳이죠.

(슬기) 저한테는 환경적인 의미에서 만족을 줘요. 병원 때문에 육지를 오가면 미세먼지와 건조함이 너무 심해서 숨쉬기조차 어렵더라고요. 그럴 때 ‘제주로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해요. 농사는 힘들어도 여기서 사는 삶 자체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아프고 나서 더 그 생각이 커졌어요. 내 농산물로 내 음식을 해 먹는 삶, 내농내먹의 비중이 커졌고 그 만족감이 커졌어요. 일은 많지만 내가 지은 것이 다시 식탁으로 돌아오는 걸 볼 때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제주 귀농이 정말 어려운 이유는 기후나 토양만이 아니다. 실제로 제주로 오기 전, 귀농 관련 문의 전화를 했다가 “여긴 병원도 없고, 다들 떠나고 싶어 한다. 오지 말라”는 식의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육지에서는 군수를 만나 가공시설 지원을 따내고, HACCP 인증을 갖춘 시설을 공동으로 쓰는 사례도 있는데, 제주에서는 그런 인프라가 훨씬 약하다는 것이다. 당근으로 가공품 하나 만들고 싶어도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그 공백은 결국 민간 네트워크와 공동체가 메워왔다. 이들에게는 금창영 선생님, 농민회, 다품종소량생산연구회, 그리고 올바른농부장이 그런 역할을 했다.

장터와 공동체

올바른농부장에서 슬기의 어머니와 슬기
올바른농부장에서 슬기의 어머니와 슬기의 다정했던 시간

올바른농부장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슬기) 다품종소량생산연구회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2022년에 관련 강의를 듣고 연구회에 합류했고, 그게 농부장 참여로 이어졌죠. 재작년에는 거의 개근하다시피 했는데, 작년엔 제가 암 판정을 받으면서 병원 통원이 많아져 자주 나가지 못했어요. 올해는 다시 참여하려고 하고 있어요. (우람) 저는 농부장이 단순한 판매장이 아니라 대안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청년들이 농사에 정착하고, 자기 농산물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전하고, 서로 지지받을 수 있는 장이거든요. 대형 유통 중심 구조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가치가 농부장에서는 드러나요.

장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나요?

(슬기) 제가 정성껏 키운 귤이나 당근을 누군가 정말 알아봐줄 때예요. 저희 귤은 방제를 거의 안 해서 못생겼거든요. 어떤 분은 “징그러워서 못 만지겠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쿵 떨어져요. 그런데 농부장에 나가면 “이런 게 진짜 맛있는 귤이다”, “이게 명품이다”라고 말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이렇게 알아주시는 분을 만나면 그럴 때 용기가 확 생기는 거죠. 어떤 소비자는 잘 몰라서 이걸 어떻게 먹어, 라고 하지만 정말 알아주는 사람이 나한테 해주는 그 한마디가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내가 이렇게 힘들고 돈도 안 되고 인정도 못 받는 일을 계속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 때 ‘계속해도 되겠다’는 힘이 생겨요.”

남매를 위해 준비한 제주술 바띠와 부추전
남매를 위해 준비한 제주술은 청귤과 꿀로 만든 소주 [바띠]. 슬기는 건강문제로 술을 먹지 못해 아쉬워하며 부추전을 안주삼아 우람과 잔을 부딪혔다.

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제주에 내려와 농사짓기 전과 비교한다면 스스로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슬기) 저는 사람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가까운 관계도 불편해했어요. 항상 이렇게 양팔 간격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가까이 오지마. 가까이 오지마. 이거보다 가까운 건 불편해. 약간 그런 그런 타입의 사람이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여기 와서 농민회 언니들이 “집 비었으니 문 열고 들어가서 냉장고에서 뭐든 꺼내가라” 할 정도로 신뢰를 보여줬어요.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한 관계였죠. 저는 여기 와서 받은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꼭 그 사람에게 되갚지 않더라도,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우람) 밭을 구하는 일, 정보 얻는 일, 기술 배우는 일, 판로를 만드는 일까지 다 사람에서 풀렸어요. 저희는 금창영 선생님과 그 주변 사람들, 농민회, 연구회 같은 네트워크 덕분에 정착할 수 있었어요. 내가 딴 지역으로 갔으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올바른 농부장도 만났고요. 도시농부학교로 시작해서 저희가 여기서 농사짓고 사는 것에 도움을 주는 좋은 인연들이 줄기 줄기를 뻗어 계속 그렇게 줄을 따라갔던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여기에 왔기 때문에 다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이제 회의감보다는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슬기) 우리는 진짜 운이 좋다. 맨날 그러면서 해왔거든요.

(우람) 누군가에게 다시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서 저희 농산물을 일부라도 나누고 있어요. 가톨릭 무료급식소인 명동밥집에 보내는데, 많아서 나누는 건 아니에요. 농사는 하늘과 땅이 허락해야 얻을 수 있는 거고, 저희가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나누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이 가져도 나누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을 때 농사를 짓는 의미를 느껴요. 저는 농사만 짓는 사람을 넘어서, 새로 오는 사람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역할도 하고 싶어요. 농사 기술뿐 아니라 제주에서 어떻게 연착륙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교육과 연결의 구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중에는 귀농귀촌지원센터 같은 역할을 민간에서라도 해보고 싶어요.

남매로서 함께 농사짓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슬기) 같이 하니까 싸우기도 많이 싸워요. 제가 제어를 많이 했던 편이거든요. “지금 급한 일부터 해라”, “딴짓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제가 아프고 나서는 동생이 더 자율적으로 해보게 됐고, 오히려 그래서 동생이 좋아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웃음)

(우람) 작년 여름에 제가 밭에서 한번 쓰러진 적도 있었어요. 그때 더 실감했죠. 농사는 몸이 자본인데, 한 명이 무너지면 전체가 흔들린다는 걸요. 그래서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게 참 다행이기도 했어요.

슬기와 우람은 척박한 제주 땅에서 다품종소량생산농사가 때로 힘들어도 여전히 사람을 만나 공부하고, 해마다 작물을 줄이고, 몸이 잠시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우람이 농가와 농가를 잇는 민간형 귀농귀촌지원센터 같은 역할을 꿈꾸는 것, 기술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새로 온 사람이 덜 헤매게 하는 일을 자신의 앞으로의 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결국 사람과 하늘에 대한 그들의 존중과 감사가 원동력이 되어 그 꿈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싶었다.

대파밭에 서 있는 슬기와 우람 남매
2년동안 키운 무농약 대파밭에서 나란히 선 남매

뫼비우스의 띠처럼 올라오는 잡초보다 그들에게 더 빠르게 이어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니 말이다.

<김슬기 / 김우람 농부 정보>

제주생명밥상 농산물: 대파, 당근, 감자
조남희 작가 사진

2012년 서른셋에 서울에서 제주도로 입도해 쭉 살고 있다. 자신처럼 제주도가 좋아 혼자 왔던 청년들의 제주 연착륙을 위한 셰어하우스 운영, 직장인을 거쳐 2018년부터 로컬콘텐츠를 발굴, 브랜드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입도 초기 ‘서울처녀 제주착륙기 ’를 약 2년에 걸쳐 현실적인 제주 정착기를 연재, ‘푸른섬나의삶 ’(오마이북 출판)을 출간한 바 있다. 좋아하는 것, 제주도와 술, 두 개가 만나 브랜드를 이뤘다. '제주한잔'이라는 로컬브랜드로 농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제주술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글. 조남희|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