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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이야기

드러나지 않은 뿌리처럼
- 윤동현 / 박은주

2026년 3월 3일의 만남

올바른농부장은 제주에서 다품종소량생산과 친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직거래 장터이자 소비자와 만나는 커뮤니티다. 한 작물에 의존하는 구조로는 가격 변동과 기후 위기를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감귤과 제철 채소, 잡곡과 허브까지 여러 작물을 소량으로 재배하며,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방식을 지향한다. 이 선택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전략이자 땅을 지키기 위한 태도다. 장터에서는 농부가 자신의 농산물 가격을 정하고 소비자에게 어떤 작물인지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상품이 아니라 농부의 시간과 얼굴을 함께 만난다. 올바른농부장은 실패와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버티는 공동체의 실험이자, 제주 농업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올바른농부장의 농부들은 다품종 소량생산을 체험할 수 있는 농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농부학교의 교장이자 제주도 성산읍 삼달리에서 2000년에 입도해 27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윤동현 단장과 아내 박은주 부부를 만났다.

글 조남희 | 사진 진정은

윤동현 / 박은주

제주 동쪽 삼달리의 밭에는 바람이 세다. 바람이 센 곳의 나무는 키가 크게 자라지 않는다. 대신 뿌리가 깊어진다. 바람을 버티기 위해서다. 올바른농부장에서 만난 윤동현 박은주 부부는 그런 나무를 닮아 있었다. 그들이 평생을 담아온 농사와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만나서 들어봤다. 막걸리를 두 손에 들고 말이다.

나는 어떤 농부인가

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윤) 저는 자영업을 하다가 서른세살에 첫 직장생활을 도시에서 시작했어요. 갑자기 영업과장이라는 자리가 주어졌는데, 영 안맞았어요. 사무능력이 좋았던 것은 아니라서, 욕만 먹은 게 3년이었죠. 그러다가 매어살기보다는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제주도로 올 생각은 아니었어요. 24살에 제대 후 집에 있자니 답답해서, 제주도에 있던 친척이 바나나농사가 괜찮다해서 3년을 삼달리에서 일해 본 전력이 있었어요. 그때 지금 삼달리 과수원의 옆집인 어린이집 원장님을 만났죠.

(박) 남편은 직장을 다녔지만 제가 볼땐 농사에 대한 꿈이 있어보였어요. 이 사람이 평생 하고자 하는 걸 하길 원한다는 기도를 했어요. 강원도, 충청도, 여기저기 돌아봤는데 원장님 전화가 온거죠. 남편은 저에게 결정하라고 했어요. 원장님 땅에서 보증금 1천만원으로 농사를 시작해볼것을 제안받아, 열심히 해왔고 3년 후 2006년도에는 땅과 집을 사게 되었어요. 제주도 농사의 결정적 계기는 아내의 동의..

“그땐 뭘 모르고 한거지.”

인연이 훗날 다시 이어졌네요. 좋은 결과를 얻으셨지만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때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텐데요

(박) 막상 와보니 쉽지 않았어요. 약 칠 때 줄 좀 잡아라 해서 도와주러 갔다가 밭에 뱀이 막 다니고.. 기겁했죠. 서울에서 직장다니며 육아만 생각하던 여자였으니까. (웃음) 2년동안은 많이 외로웠어요. 친구도 없었고요. 첫 2년동안은 우리 부부가 많이 싸웠어요.

(윤) 삼달리 과수원 연수입이 겨우 9백만원이었어요. 농협 공판장과 거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죠. 농산물 인증제를 잘 몰라서 미처 무농약 인증을 못 받아서 친환경으로 팔수가 없었어요. 2001년에 감귤 15키로 80박스를 보냈는데 들어온 돈은 20만원남짓이었어요. 다 팔아봤자 한박스 2,500 원인거죠. 유통비용 정산 후 수입이 그랬어요. 경상도말로 밥 팔아서 똥 사먹는 격이었죠. (웃음)

윤동현 농부는 2002년 무농약 인증 후 소비자와 직거래를 시작했다. 결과는 완판이었다. 주변의 잔소리는 부러움으로 변했다. 왜 약을 안치냐, 밭에 잡초가 왜이렇게 많냐, 서울에서 왜 왔냐는 말들은 우리것도 팔아달라는 말들이 돌아왔고 주변의 일곱농가가 무농약 인증을 추가로 받아 작목반이 형성되었다. 자신의 땅 1,600 평에 주변에서 빌려주는 땅까지 규모는 점점 늘어나 2004년에는 만평 농사가 되었다. 1억 수입을 이룰 수 있을줄 알았는데 2006년 겨울 박은주씨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평수를 줄이기 시작하며 감귤 외에 당근농사를 조금씩 시작했다. 다품목을 하는 이유는 봄이 되면 찾아오는 보릿고개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내의 병원비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자금을 회전시킬 수 있는 작목들을 여러 가지 하자는 생각의 실행은 귤, 콩, 감자, 당근 고객들이 연결되는 결과가 되었다. 윤동현 농부는 자체적으로 작물에 등급을 부여했다. 건(건강), 은, 정(혼합), 경(대과) 등 자신만의 농산물 등급을 직거래 사이트에 적용해서 소비자들의 프리미엄 구매를 유도했다. 기존의 2만원 세트를 선물용 로얄과로 재구성해 4만원에 내놓는 시도를 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면 이런 시도를 과감히 해볼 수 없거든요. 일단 시작하니까 어렵지 않았어요.”

밭에서 당근을 들고 걷는 농부

사고가 나고 많이 힘드셨을 것 같은데 농사를 그만두고 싶진 않았나요?

(윤) 그런 생각은 안했어요. 나는 제주에서 뼈를 묻겠다는 결심을 했거든요. 아내가 사고로 다쳤을 때 많이 힘들었지만 결혼할 때 마음먹은 것은 좋을때든 안 좋을때든 같이 간다는 거에요.

(박) 병원생활 힘들었어요. 수술을 8번은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제주도행과 남편과 함께 농사짓는 삶을 후회하지 않았어요. 내가 어디있든 사고는 나는거니까요.

당근을 수확한 윤동현 농부
감귤을 든 박은주 농부

다품종소량생산이라는 선택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농사를 하고 계신데, 현재 몇 품목 정도를 재배하고 계신가요?

(윤) 수입을 회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는 이게 정말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규모를 줄여서 400평 정도의 땅에서 다품목 소량생산으로 로컬에서 판매하면 우리 둘 사는데 딱 맞을 것 같아요. 새로 농사에 진입하는 사람들도 여러 작물들을 실험재배하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 후 작목을 한두가지로 정해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나이든 사람들도 체력이 허락하면 가능한 평수고요. 지금은 대략 열다섯 가지 품목을 하고있어요. 올바른농부장과 로컬푸드직매장, 소비자 직거래 온라인몰 등에서 판매해요. 초창기에는 30~40 가지였는데, 인증센터에서 좀 줄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였죠. 대중적이고 선호도가 높은 품목들 중에 ‘알아서 크는 아이들’을 섞어 줘야 해요. 경험이 필요한 일이죠.

다품종소량생산의 가장 큰 장점과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윤) 어려운 점이라면 관심을 온전히 기울여야 한다는 거에요. 농사는 관심이 제일 중요해요. 자주 들여다보는 거에요. 새로 농사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수확물을 많이 만들고 이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다품종소량생산이에요. 못생기고 작고 유통용이라는 범주를 벗어나는 농산물도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어요. 그간 소비자도 유통구조가 만든 익숙한 것을 따라간 거라 생각해요. 익숙한 생김새와 사이즈만 접해서 그런거죠.

올바른 농부장에 오는 분들은 다양한 품종의 농산물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농산물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올바른 농부장이 중요해요. 농심보다 상심(商心)이 큰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실은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선택을 원하는데 그것을 맞춰주려면 여러 농부들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협업해서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다품종소량생산은 소비자가 이끄는 것, 농부는 그 길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

장터와 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현장

장터와 공동체

올바른 농부장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윤) 농촌의 열악한 현실이 계기가 되어서 친환경 농부들이 의기투합했어요. 우리는 을의 입장에서 당하기만 하니까. 감자농사를 지었는데 계약시점에는 평당 5천원에 계약을 했지요. 그런데 수확시점에 감자값이 하락하니 유통상인은 평당 2천원을 요구했어요. 반대로 시장가격이 올라가면 값을 더 쳐주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는 않죠. 농민은 늘 당하는 입장이에요. 농민을 수단으로만 보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 자구책을 만들기로 한거죠. “올바른 농부장에 나오니 하루에 백만원씩 판다고 하면? 그런 장을 우리가 한번 만들어봅시다.”

올바른농부장 장터 현장 사진

(윤) 호기롭게 농부들이 직접 만든 장터가 시작은 했는데, 막상 해보니 농부들의 응집력이 없었어요. 한두번 나와보고 더 이상 나오지 않더라고요. 이탈자를 막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그런데 안 팔리는데 계속 나오라고 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죠. 운영진의 고민은 깊어지는데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제 인생경험으로는 그럴때는 그냥 계속 해나가는 것이 답이었거든요.

어느 장날은 태풍이 오는 날씨였어요. 소비자와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태풍이 오더라도 강행했어요. 당장 얼마를 팔기보다는 약속을 지키는 농부들이 되기로 했어요. 그날 장이 끝나고 무지개가 떴어요. 정말 안될 때, 해야 될 의미도 못 찾을 때, 그래도 장으로 나옵시다 했던 때가 기억나요.

윤동현 농부는 그 날 태풍이 지나간 후 무지개가 떴던 순간을 기억에 남는 올바른농부장의 순간으로 꼽았다. 한 달에 두 번, 첫째주 일요일과 셋째주 토요일에 열리는 농부장은 7년에 걸쳐 이어져 작년말 100회를 맞이했고, 아직 하루에 백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농부는 많이 없지만 신입 회원이 매년 5팀 정도로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

올바른농부장 장터 모습

앞으로 어떤 농부로 남고 싶나요? 농부장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농부는 늘 뿌리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뿌리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죠. 앞에 나서는 드러난 뿌리 같은 농부보다는 그렇지 않은 농부가 되고싶어요. 농부장에 가면 나는 내 것 파는데는 관심이 없어요. 적극적으로 못 파는 농부들이 보이면 안타깝고, 내 안의 다른 내가 나서게 되더라고요. 그런 농부이고 싶어요.

“열매는 결국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 열매는 모두 뿌리에서 나옵니다.”

지금 올바른 농부장에 바라는 것은, 농촌에 정착하고자 하는 청년들 중에 농업에 진정성이 있는 사람들이 농부장의 주축이 되어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20년 이상 농사를 지은 우리들은 이제 조금 물러나고요.

생산성의 학문으로 농업을 바라보기보다는 원래 갖고있는 작물의 본성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는 윤동현 농부는 작물에 균일한 규격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 크고 작은 작물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라 한다. 원래 나무가 갖고 있는 본성을 존중하고 간섭을 해야 할때와 아닐 때를 가려야 한다는 지론이다.

세 아들을 둔 윤동현 박은주 부부는 자식농사에도 같은 생각이라 각자의 생각과 방식을 존중한 결과, 세 아들 모두 농업인의 길을 가기를 내심 기대한 것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농사가 무엇보다 가장 생산적인 일이라고 믿어요. 이것만큼 보람있는 게 없어요. 그래서 아들들도 그 길을 가면 좋겠습니다.”

당근막걸리를 나누는 윤동현 박은주 부부
당근막걸리를 마시는 윤동현 박은주 부부

평소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윤동현 농부를 위해 기자가 준비해 간 로컬술은 당근 막걸리와 제주벚꽃으로 만든 벚꽃막걸리였다.

꽃길만 걸을 수는 없는 게 인생인 법, 인생의 절반을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농사의 길을 걸어온 농부의 대표 작물인 당근이 가득한 막걸리를 한 잔 따라드리며, 모험과 도전이 버무려져 새콤달콤한 그 맛이 어쩌면 그의 인생에 참 잘 어울린다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벚꽃막걸리는 집에서 두 분이 따로 드시라 슬쩍 내려놓고 오는 길이다.

<윤동현 / 박은주 농부 정보>

유기촌 농산물: 3색당근, 인디언감자, 울릉도홍감자, 작두콩, 건고사리
조남희 작가 사진

2012년 서른셋에 서울에서 제주도로 입도해 쭉 살고 있다. 자신처럼 제주도가 좋아 혼자 왔던 청년들의 제주 연착륙을 위한 셰어하우스 운영, 직장인을 거쳐 2018년부터 로컬콘텐츠를 발굴, 브랜드로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입도 초기 ‘서울처녀 제주착륙기 ’를 약 2년에 걸쳐 현실적인 제주 정착기를 연재, ‘푸른섬나의삶 ’(오마이북 출판)을 출간한 바 있다. 좋아하는 것, 제주도와 술, 두 개가 만나 브랜드를 이뤘다. '제주한잔'이라는 로컬브랜드로 농산물을 기반으로 하는 제주술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글. 조남희|인스타그램